오스카 굿맨이 라스베가스에 남긴 흔적, 당신이 몰랐던 사실
오스카 굿맨은 누구인가?
오스카 굿맨(Oscar Goodman)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의 전 시장으로, 도시의 현대적 발전과 독특한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1939년 7월 26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는 변호사로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후 라스베가스의 정치 무대로 진출해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시장직을 수행했습니다. 굿맨은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라스베가스를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독특한 리더십 스타일과 과감한 정책은 라스베가스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변호사 시절, 오스카 굿맨은 조직범죄 관련 인물들의 변호를 맡아 '마피아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영화 카지노에서 그의 삶이 부분적으로 묘사될 정도로, 그는 라스베가스의 어두운 과거와도 연결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장으로서 그는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해 도시의 독특한 매력을 강조하며, 관광객과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라스베가스는 단순한 도박의 도시에서 문화, 예술, 경제가 어우러진 글로벌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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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시장 집무실<출처:라스베가스위클리> |
라스베가스에 끼친 오스카 굿맨의 공헌
1. 다운타운 재개발과 도시 활성화
오스카 굿맨의 가장 큰 공헌 중 하나는 라스베가스 다운타운 지역의 재개발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다운타운은 스트립 지역에 비해 낙후되어 있었고,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습니다. 굿맨은 이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리언스(Fremont Street Experience)는 그의 비전 아래 완성된 상징적인 랜드마크입니다. 이곳은 거대한 LED 캐노피와 화려한 조명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며, 다운타운을 다시 활기찬 중심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는 또한 예술과 문화를 다운타운에 접목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예술가와 창작자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소규모 비즈니스를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다운타운을 단순한 도박 장소가 아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정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 경제 다각화와 일자리 창출
라스베가스가 도박과 카지노에만 의존하던 시절, 굿맨은 경제 다각화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의료, 기술, 교육 분야의 투자를 유치해 도시의 경제 기반을 넓혔습니다. 특히 클리블랜드 클리닉 루 볼프 메디컬 센터(Cleveland Clinic Lou Ruvo Center for Brain Health)의 설립은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입니다. 이 센터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독특한 건물로, 의료 서비스뿐만 아니라 관광 명소로도 자리 잡았습니다.
이와 함께 그는 컨벤션 산업을 육성해 라스베가스를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정책 덕분에 컨벤션 센터가 확장되었고, 매년 수백만 명의 비즈니스 방문객이 라스베가스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습니다.
3. 라스베가스의 브랜드 강화
오스카 굿맨은 라스베가스를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수도"라는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데 탁월한 마케팅 감각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쇼맨십을 즐기는 성격으로, TV 프로그램과 영화에 출연하며 라스베가스의 얼굴로 활약했습니다. 심지어 마티니 잔을 들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거나, 쇼걸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이런 과감한 퍼포먼스는 라스베가스의 자유롭고 독특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또한 스포츠 산업 유치에도 힘썼습니다. 비록 재임 중에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NHL의 라스베가스 골든 나이츠(Vegas Golden Knights)와 NFL의 라스베가스 레이더스(Las Vegas Raiders) 같은 프로 스포츠 팀 유치는 그가 뿌린 씨앗에서 비롯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4. 지역 사회와의 소통
굿맨은 시민과의 소통을 중시한 시장이었습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주민들과 만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노숙자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라스베가스가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살기 좋은 도시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실용적이면서도 인간미가 넘쳤고, 이는 시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는 이유였습니다.
오스카 굿맨의 유산과 현재
2011년 시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오스카 굿맨의 영향력은 라스베가스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아내 캐롤린 굿맨(Carolyn Goodman)이 2011년부터 현재까지 시장직을 수행하며, 부부는 라스베가스 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오스카는 퇴임 후에도 라스베가스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더 몹 뮤지엄(The Mob Museum)"은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라스베가스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오스카 굿맨은 라스베가스를 단순히 도박의 도시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글로벌 도시로 재정의했습니다. 그의 대담한 리더십과 창의적인 비전은 라스베가스가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라스베가스를 방문한다면, 그의 흔적이 담긴 다운타운의 거리와 건물에서 그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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